봄빛에 취해, 나의 광주웨딩박람회 관람 준비 체크리스트를 꺼내본다
어제 저녁, 퇴근길 버스 창가에 기대어 멍하니 흘러가던 전봇대를 세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박람회가 코앞이네?” 달력이 묘하게 얇아진 느낌. 신기하다. 날짜는 늘 한 칸씩 줄어드는데, 마음은 두 칸씩 뛰어내린다. 결혼이라니… 말끝이 어색해서 괜히 목을 가다듬었다. 그래도 오래 꿈꿔온 터라 설렘이 더 크다.
사실 나는 계획형 인간이 아니다. 그날그날 기억나는 대로 챙기다 보니 가끔은 청첩장에 커피 얼룩을 남기고, 가끔은 웨딩드레스를 꿈꾸다 잠에서 깨어 이마에 베개 자국을 남긴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미리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두근반, 걱정반으로 적어 내려간 나만의 비밀 노트. 오늘은 그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한다. 혹시 나처럼 첫 관람을 앞두고 살짝 떨리는 예비신부(혹은 예비신랑)라면 같이 읽으며 머릿속 가방을 채워보면 어떨까?
장점 & 활용법 & 꿀팁 ― 적당히 흐트러진 순서로
1. 사전 등록, 그것은 귀찮지만 달달한 선물
나는 모바일로 사전 등록을 했다. 클릭 몇 번이면 끝이지만, 그 몇 번을 미루다 밤 열두 시가 되어서야 완료했다. 다음 날 아침엔 “사전 등록 고객에게 한정 기프트”라는 문구를 보고 쿡쿡 웃었다. 졸린 눈으로 남긴 내 흔적이 이렇게 보상받다니. 그러니 당신도 귀찮아도 꼭 해두길. 들어가자마자 긴 줄을 건너뛸 수 있다는 건, 대체할 수 없는 꿀 이득!
2. 일정표보다는 동선 스케치
부스마다 놓인 레이스, 반짝이는 샹들리에, 달콤한 시식 코너… 모든 것에 홀려 맥 없이 떠다니는 풍선처럼 구경하다 보면 발바닥이 먼저 항의한다. 그래서 나는 일정표 대신 동선을 그렸다. 입구 → 드레스 → 예식장 → 스냅사진 → 한복 → 폐백 음식 정도로 거칠게. 물론 현실에선 늘 삐뚤어지지만, 지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안정된다.
3. 체크리스트, 종이가 낭만이다
아, 휴대폰 메모장도 좋지만, 나는 종이를 접어 작은 파우치에 넣었다. 메모하는 순간 손끝에 잉크가 스미는 그 감각! 설명을 듣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 표시를 그려뒀다가 잠깐 창가에 서서 정리했다. 그 작은 틈에서 호흡을 고르고, “내가 원하는 건 뭘까” 조용히 물어볼 시간을 얻는다.
4. 예산, 숫자에 감정을 달아 놓다
솔직히 말하자. 견적표를 받으면 머리가 띵해진다. 그래서 나는 항목마다 스티커를 붙였다. 마음을 사로잡은 부스엔 별, 부담스러운 곳엔 파도, 애매하면 점. 나중에 한눈에 느낌을 알 수 있더라. 예산도 결국 감정의 합이니까!
5. 나만의 휴식 스폿 찾기 😊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구석에 아담한 카페가 있다. 창문 너머 햇빛이 살살 내려앉아 잠시 도피처가 되어 준다. 구두 때문에 발등이 욱신했을 때, 나는 거기서 아이스라테를 마시며 메모장을 뒤적였다. “아, 결혼식엔 음악을 직접 선곡해야겠다” 같은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그때 튀어나왔다. 휴식, 무시 못 한다.
6. 출구에서 다시 입구로 ― 재순환의 미학
처음엔 긴장과 호기심이 섞여 말수가 줄어들었다가, 나중엔 정보 과부하로 아무 말 대잔치가 이어진다. 그래서 한 바퀴 돌고 나서 입구로 다시 돌아가 조금 전에 놓친 부스를 메꾸었다. 생각보다 얻는 게 많았다. 첫 번째는 ‘경험’, 두 번째는 ‘확신’. 재방문이 귀찮다고? 음… 놓치면 후회가 더 귀찮다!
단점 ― 솔직히 털어놓는 순간
1. 사람·사람·사람, 그리고 소음
토요일 오후 2시. 인파는 파도, 웅성거림은 파도에 부딪힌 자갈 소리. 상담 받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목소리가 커진다. 민망하다. 나중엔 목이 탔다. 물을 늘 챙겨야 했다.
2. 과도한 이벤트 유혹
‘오늘 계약 시 30% 할인!’ ‘추첨 증정!’ 현수막이 번쩍거린다. 나도 한순간 지갑을 열뻔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니, 마음이 식었다. 충동을 잠재우려면 ‘당일 계약 NO’라는 작은 다짐이 필요하다.
3. 시간 순삭, 정보 과다
두세 시간인 줄 알았는데, 다섯 시간이 훌쩍 지났다. 들뜬 기분에 메모는 늘어나는데, 정리하지 않으면 오히려 혼란스럽다. 당일 저녁, 반드시 정보를 분류해야 한다. 안 그러면 전화번호가 누군지 헷갈려서 다음 날 “혹시 어제 그 스냅 작가님 맞나요?” 하고 엉뚱한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나는 실제로 보냈다…!)
FAQ ― 버스 창가에서 떠올린 Q&A
Q1. 복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A1. 나는 화이트 블라우스에 편한 슬랙스를 입었다. 사진을 찍어도 단정해 보이고, 굽 낮은 로퍼로 발이 안 아팠다. 정장보다 ‘꾸안꾸’가 좋다.
Q2. 동행자는?
A2. 예비 배우자 + 친구 한 명을 추천한다. 둘이서만 가면 의견이 비슷해져 버리고, 셋이면 균형이 맞다. 친구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주기도 했다.
Q3. 무엇을 꼭 챙겨야 할까?
A3. 신분증(경품 수령용), 볼펜, 텀블러, 그리고 편한 마음. 특히 마지막이 제일 중요. 예비부부라고 모두 전문가인 건 아니니까, 몰라도 웃으며 물어보면 된다.
Q4. 당일 계약, 정말 하지 말아야 할까?
A4.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난 하루 숙면 뒤에 결정하기로 해서, 지금도 만족한다. 당일에만 주는 혜택이 정말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보라.
Q5. 어디서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A5. 나는 광주웨딩박람회 공식 페이지를 수시로 들여다본다. 일정 변경, 참가 업체 리스트가 빠르게 올라온다. 덕분에 ‘어? 이 브랜드도 나오네!’ 하며 기뻐한 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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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버스 창문에 비친 얼굴보다 살짝 더 들뜬 하루치 기록이었다. 혹시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두근거리고 있다면, 그 떨림을 잘 접어 가방 속에 넣어두라. 박람회장 입구에서 꺼내 펼치면, 반짝이는 웨딩로드가 눈앞에 열릴 테니까. 준비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린 결국, 사랑이라는 큰 주제 앞에 서툴 수밖에 없는 초보 여행자들이니.